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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김의영 조회: 1207, 줄수: 610, 분류: Etc.
네팔 여행기 3부 (카트만두 그리고 그 후)
5/17 카트만두 관광



임페리얼 게스트 하우스로 숙소를 옮긴 후 오늘 하루의 계획을 세웠다.

1. 스와얌 부나트

2. 파슈파티나트

3. 보우드 넛

4. 박타풀

5. 파탄



중 4가지를 하고자 계획을 세우고 론니 플래닛에 나온 주변 유적지의 지도

와 가는 길 등을 상세히 머리 속에 외워두기 시작한다.

어제 미리 봐 두었던 오토바이 랜트 가게에 가서 오토바이를 빌린다.

터키에서 오토매틱 기어 오토바이를 타본 적이 있었으나, 기어가 달린 오

토바이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카트만두 시내는 길이 매우 울퉁불퉁하고 매연도 매우 심하고 차들도 제멋

대로 다니고 골목이 매우 비좁은데 사람들과 동물들까지 가세해 오토바이

를 타기에는 매우 어려운 곳이어서 고민을 많이 했지만, 내가 원하는 곳,

가고 싶은 곳에 직접 운전을 해서 가고 싶은 마음에 오토바이를 빌리기로

했다.



오토바이를 빌려주는 애에게 400 루피를 주고나니 그 놈은 그냥 가게로

들어가 버리려고 했다. 주인에게 잠시 이리로 오라고 하니 다시 되돌아온

다.


의영 : 오토바이 시동은 어떻게 거니?




주인은 뭔가 미심쩍은 듯 꽂혀진 열쇠를 돌리더니 오른쪽 발로 페달을 힘차

게 밟으니 오토바이가 시동이 걸린다. 주인은 다시 가게로 들어가 버리려

한다.


의영 : 잠시만 다시 와봐. 오른손 레버와 왼손 레버 중 어느 것이 브레이

크고 어느 것이 클러치야?





주인은 미심쩍은 얼굴로 내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보더니 오른쪽이 브레이

크라고 한다.


의영 : 그럼 오른쪽 페달이랑 왼쪽 페달중에 어느 게 기어시스템이니?


주인 : 오토바이 타 본적 있어?


의영 : 아무 문제 없어~


주인은 왼쪽 페달이 기어 시스템임을 알려주더니, 걱정스러운 듯 오토바이

를 탈 수 있겠느냐고 물어본다.





아무 문제 없다고 들어가라고 말을 해 주었지만, 그는 내가 시동을 몇 번

의 실수 끝에 걸고 다시 시동을 꺼뜨리고 기어를 조작하는데 버벅거리는걸

보고만 서 있다.


오분 정도 실갱이를 하니 이제 좀 어떻게 조작하는지 알 것 같았다.





오토바이를 운전하면서 가이드 북을 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미리 외

워놓았던 지도상의 도로와 해의 위치와 동서남북의 방위를 생각해 가며 대

충 길을 찾아 갔다.


첫 번째 목적지인 스와얌부나트에 가는 지도를 본 후 머릿속에 외운다.

지도를 가방에 넣고 어깨에 맨 후 어설프게 운전을 시작했다. 차 한 대 겨

우 지나갈 만 한 길에 소, 염소, 사람, 자전거, 오토바이, 자동차가 뒤엉

켜 지나간다. 비포장도로 위를 달리는 내 머리에서는 헬멧 사이로 식은땀

이 줄줄 흘러 내리고 있다. 넘어지게 되면 몸이 다치는 것도 문제이지만,

남은 여행을 망쳐버리는 건 치명적이다. 결국 식은 땀을 줄줄 흘려가면서

10분이면 갈 수 있는 스와얌부나트 (monkey temple)에 한시간이나 걸려

갈 수 있었다. 우리에게 monkey temple로 더 잘 알려진 이곳엔 생각보

단 원숭이가 적었고 그다지 원숭이의 횡포도 눈에 띄지는 않았다. 동네 강

아지 마냥 어슬렁 거리는가 하면서 어떤 놈은 지붕 위에서 일광욕을 하며

자기도 했다. 스와얌부나트에 대한 기대가 조금 컸기 때문이었겠지만 그다

지 좋은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두 번째 목적지인 파슈파티나트와 보우드넛은 스와얌부나트와 정 반대쪽

인 카트만두의 동쪽이었다. 다시 지도를 외운 후 카트만두 시내를 가로질

러 동쪽으로 향한다. 덕분에 오토바이 실력도 많이 늘었고 카트만두의 시

내 도로도 모두 알 수 있게 되었다. 파슈파티나트는 힌두교 사원으로 큰

규모였고 힌두교의 성지와 같은 곳이었다.


시바를 위해 지어진 이 사원의 중앙 사당은 힌두교인들만 출입이 가능한

곳이라서 나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내가 인도 사람인 줄로 착각한 직원

은 내게 카메라와 신발을 보관할 수 있는 사물함의 열쇠를 주었지만, 그

만 실수로 네팔 말로 된 위가 터진 8의 모양을 한 숫자가 4인데 실수로 7

로 읽는 바람에 내가 외국인임이 들통나 버렸다.


(위가 터진 8은 네팔에서 4이고 8모양은 네팔에서 7이라는 뜻이다)


강가의 화장터 한 곳에서는 이미 불이 타고 있었고 그 옆에서는 장례의식

이 한창이었다. 강가의 테라스에 앉아 잠시 생각에 잠긴다. 갠지스강의 최

상류, 힌두교인들에게는 최고의 성지인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을

본다.


그리곤 저 더러운 물에 목욕을 하고 있는 사람과 화장이 끝나면 저 강에

뿌려지게 될 불에 타고 있는 시체를 바라보면서 알지 못한 감정에 휩싸이

게 됨을 느꼈다.


힌두교의 성지인 파슈파티나트에서 죽고 싶어하는 힌두교인들의 믿음은 과

연 무엇인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강물에 목욕을 하는 사람들의 신념은

무엇인지, 과연 화장터에서 장례를 치르는 친족들의 마음속엔 어떤 믿음

이 자리 잡고 있는지 나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한 시간 정도를 자리에

앉아 화장터의 모습을 바라보게만 된다.


다시 시내로 돌아와 점심 식사를 김치 하우스에서 했다. 김치 하우스의

사장은 나에게 오후에 어디에 갈거냐고 묻는다. 파탄에 갈 거라고 하니 자

기도 친구를 만나기 위해 파탄에 갈 예정이니 같이 가자고 했다. 마침 오

늘은 1년에 한번 있는 파탄의 축제일이었다.


파탄에 가서 김치하우스 사장의 친구네 집에 초대를 받아 음식을 대접을

받았다. 김치하우스의 사장의 친구는 가이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네팔에

서 한국어 공부를 하다가 경희대학교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6개월

간 한국어 언어 과정을 수료하고 온 사람이었다. 그의 집에서 그의 한국

생활과 사진을 구경했다. 참 재미있는 사람으로 그는 나를 위해 오후 내

내 파탄을 안내해주고 가이드를 해 주었다. 그리고 파탄에서 있던 기우제

축제는 정말 대단한 것이었는데, 수 만 명의 사람이 덜발 광장에 모여 있

는 모습은 월드컵 때 우리가 광화문 네거리에 모여 있는 것 같았다.


큰 수레바퀴가 달린 수레차에 높이가 30미터 정도 되는 잎사귀가 무성한

나무를 엮어 놓아 큰 기둥처럼 만들어 놓았는데, 그 나무가 쓰러지지 않도

록 사람들이 줄을 당겨 나무의 균형을 잡고 수레차의 앞에서는 줄다리기 하

듯 사람들이 줄을 당겨 수레차를 옮겨가곤 했다. 수레차가 조금이라도 움

직일 때마다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북을 치고 박수를 치고 함성을 부

르고 춤을 추는가 하면 건물 옥상 위에서는 물을 뿌리곤 했다. 나도 참여

해서 줄을 당겨 보기도 했다.


왜 이런 일에 사람들이 열광을 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

에도 남원의 춘향이 축제를 비롯한 수많은 지방 민속 축제가 있다. 그렇지

만 한국에서는 축제를 개최하는 주최측의 사람들만 몇 몇 보일 뿐 관광객이

나 현지 주민들의 참여는 눈을 뜨고 찾아볼 수 없다. 아마도 네팔 사람들

에겐 특별한 놀이나 바쁜 일이 없는 듯 해서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우리

가 월드컵 때 국민들이 뭉쳐 길거리에서 보여주었던 모습에 감동을 받았듯

이 이들이 한가지 일에 모두가 힘을 모아 열광하는 모습은 무척 인상적인

모습임이 틀림없다.






5/18 라짐팟의 장사장님 댁으로




임페리얼 게스트 하우스를 나와서 라짐팟의 장사장님 댁으로 향한다. 18

일 만에 나타난 나를 모두들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그리고 4월에 다큐멘

터리 '히말라야에서 온 편지'에서 주인공으로 나왔던 핀죠 아저씨가 있었

다.


정말 핀죠 아저씨 한 번 보고 싶었는데.... 신난다.


그동안 먹어보지 못한 정말 맛있는 밥을 먹고 장사장님 가족들과 그동안 지


낸 이야기를 나누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저녁때가 되자 초등학교,중학교,대학교 동창이고 친하게 지냈던 민혜가

나타난다. 인생 오래 살지 아니하였건만, 그래도 참..세상은 정말 오래

살 고 볼 일인 것 같다. 자주 가던 강남과 압구정동에서도 만나지 못했던

친구, 한국에서도 우연히 마주쳤으면 마주쳤음직한 친구인데, 한국에서는

3년 동안 한번도 보지 못하다가 우연히 만난 곳이 네팔의 라짐팟의 장사장

님 댁이라니! 이런 것이 여행의 묘미가 아닌가 생각된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사람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모두들 잠자리

에 들었다. 갑자기 적막한 이곳에 있으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좀 우울해 진

다. 이번 여행에서 내일은 처음으로 아무 계획도 없는 날이다. 그래서인

지 왠지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쓸쓸한 마음이 밀려오

는 게 아닐까...





5/19 ~ 5/23 휴식과 래프팅



장사장님 집에서 몇 일을 아무 일 없이 쉬면서 보낸다. 매일 맛있는 밥을

해 주시는 형수님의 솜씨에 감탄하면서!

다음 식사 메뉴는 뭘까 생각하며 항상 밥 시간만 기다리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19일부터 23일까지 이 시간 동안 민혜가 1박 2일로 오쇼라즈니쉬 센터에

명상을 하기 위해 들어간 것과 그 후에 함께 당일로 레프팅을 간 것 이외에

는 편안한 휴식 시간을 갖었다. 심신이 많이 약해져서 온 친구 민혜, 장사

장님 가족들과 핀죠 아저씨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즐겁고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대문의 대리석 위에서 찜질을 하는 딸기와도 많은 시간을 보냈

다.


그러다가 심심하면 민혜와 함께 타멜 거리로 나가 맛있는 것도 먹고 구경

도 한다.


장사장님 댁에서 가장 좋은 시간은 저녁 6시와 7시 무렵 3층의 테라스에

서 차가운 맥주를 마시며 바라보는 석양을 바라볼 때이다. 몇 시간이라도

볼 수 있을 것 같은 아름다운 석양은 아쉽게도 길어야 한 시간 정도뿐이지

만, 라짐팟에 머무는 몇 일간 그 시간은 항상 빼 놓지 않고 기다려지곤 했

다.


장사장님 댁 앞에는 맥주를 파는 가게가 있다. 처음에 갔을 때는 what

do you want?


라고 묻던 가게 주인은 몇 일 간 항상 해질 무렵 같은 시간에 나타나 맥주

를 사는 나에게 적응이 됐는지 3일째 되던 날에는 how many bottles? 라

고 묻는게 아닌가. 윽..쪼팔리게.. 이제 그는 내가 알려주지 않아도 차가

운 것으로 칼스버그와 산미구엘을 섞어서 준다.





                  래       프       팅




래프팅을 하러 가서 함께 배를 탈 사람을 기다렸다. 웬 동양 여자 한 명

과 티벳 남자 한 명이 도착했다. 그 동양 여자는 스타일은 좀 있었으나 왠

지 촌스러운 분위기가 난다. 내가 민혜에게 저 여자가 어느 나라 여자인지

를 10달러 내기를 하자고 했다.


의영 : 난. 타이완!


민혜 : 에이 .. 그런게 어딨어. 내가 타이완 할래


우리는 한동안 서로 타이완을 하겠다며 실갱이를 벌이고 있었다.


의영 : 그래..그럼 내가 양보해서 일본 할게. (가끔 촌스런 특이한 일본

애들도 있으니깐)


이렇게 서로 합의를 보고 있는데 앞에 동양 여자가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

다.


동양 여자 : 안녕하세요?


으..~ 미안해라.. 그녀에게 그 옆에 티벳인은 친구냐고 물으니 그녀는

husband라고 말했다. 그리고 한마디 더 ..."전 일주일 전에 네팔에 왔어

요. 저희는 그저께 결혼했어요."


나중에 물어보니 티벳인 청년의 친적이 카트만두에 살고 있고 지금은 결혼

해서 그 친척집에 함께 있다고 했다. 남자 집에서는 그 사실을 다 알지만

한국에 있는 그녀의 부모님은 그 사실을 모른다고 했다.


순간 얼어버린 나...... 할말을 잃고......


분위기 파악 못하는 민혜는 "어머 결혼해서 좋으시겠어요. 축하해요" 라

며 분위기 파악 못하는 말을 계속 하곤 했다.


나중에 돌아가는 승용차 안에서 그 여자가 재미보고 한국으로 도망가면 순

진한 티벳 청년은 한국 비자도 받지 못한 채 마음의 상처만 생기겠구나라

고 말을 하니 민혜는 그제서야 분위기 파악을 하는 듯 그 남자가 불쌍하다

며 돌아가는 차에서 내내 걱정만 하고 있었다.



여행을 다니면, 이와 같은 경우를 종종 만나게 된다. 치트완에서 만났던

오렌지족 네팔인의 여자 친구인 독일 여자도 그런 경우일거라 생각한다.

주로 못사는 나라의 청년들은 자기 애인이 한국에 있는데 연락이 안된다거

나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는다거나, 그녀의 부모는 영어를 못하니 그녀와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거나, 아니면 그녀를 바꿔 달라는 한국어

발음을 영어로 써 달라거나 하는 경우들을 보게 된다.


그런 여성분들이 여행을 어떻게 하건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다. 그 방식

이 그들이 여행을 즐기는 방식일지도 모르고 순간의 감정이지만 그 순간 당

시의 감정에 충실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건 내가 어찌 고쳐 줄 수

없는 일이지만, 나중에라도 연락이 된다면 기다리고 있는 외국 청년들에

게 그저 당신은 하룻밤 상대였다고 솔직히 말해주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

다.  


트리슐리 강 래프팅은 정말 재미있었다. 최고의 건기인 5월 달이지만, 급

류가 정말 환상적이었다. 나는 좌우 맨 앞을 번갈아 가며 앉았는데, 급류

의 파도에 몇 번 가슴을 정통으로 맞아 두 번 뒤로 벌렁 넘어가 버린다.

중간에 캡틴이 샌드위치에 과자도 좀 준다.

그는 9박 10일간의 래프팅도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해 주었다. 언젠가 이

곳에 다시 오게 되면 9박 10일은 아니어도 3일 정도 일정의 래프팅을 해보

고 싶다.







        작 별   인 사 도   없 이   헤 어 진   핀죠아저씨





드디어 떠나기 전날이다. 오랫동안 다녔던 네팔의 여행을 정리하고 이젠

새로운 마음으로 캄보디아로 향해야 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혼자 가야

하는 것이겠지만, 즐겁게도 이젠 캄보디아와 한국까지의 동행이 생겼다.

^^ 심심하지는 않을 것 같다.


마지막 저녁을 먹고, 핀죠는 장사장님에게 " 저 이제 집에 가볼께요" 하


고 집으로 간다. 우리들은 "안녕히 가세요" 라며 평소처럼 인사를 나누었


다.


다음날 비행기 안에서야 깨달은 것이지만, 그렇게 다시 만날 것처럼 평소

처럼 인사하고 퇴근한 핀죠아저씨는 그게 우리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던 것이

다. 왠지 서글픔이 밀려온다.


다음날 새벽 여섯시. 우리는 급히 짐을 챙겨서 장사장님과 형수님의 배웅

을 받으며 트리부반 공항에서 마지막 작별을 고한다. 그리고 올 겨울 에베

레스트를 가슴에 품고 돌아올 것을 약속하며 그렇게 우리는 태국과 캄보디

아를 향해 날아갔다.






        맺  음  말  ,    캄보디아 그리고 그 후......




우리는 10일간의 캄보디아와 5일간의 태국 관광을 마치고 함께 인천으로

돌아온다.


여행을 마치며, 만감이 교차하는 복잡한 생각들, 그리고 정말 많은 사건들

로 기억이 채색되었지만, 그 중에서도 이번 여행은 나에게 이별이란 어떤

것인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만들었다.





사람은 항상 그 마지막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사는 것 같다.


처음 '히말라야에서 온 편지'에서 만났던 핀죠 아저씨와도 떠나기 전날 퇴

근하는 아저씨와 안녕히 가세요 라고 인사한 게 마지막 모습이었다. 우리

는 그게 마지막인지 몰랐다.




그리고 캄보디아의 씨엠리업에서 10일 동안 우리의 전속 오토바이 기사

로 일한 완이라는 청년...한국말도 어설프게 하는 그 녀석과는 정말 친하

게 지냈었는데, 떠나기 전날 우리는 지뢰박물관과 킬링필드를 그의 오토바

이로 갔다가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오는 길에서 스타마트  편의점에 들리게

되었다. 오토바이 택시를 탄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스타마트에서 잔돈을

바꾸고 웃돈을 얹어 완에게 주고 우리는 걸어갈테니 먼저 집으로 가라고 말

한 그 모습, 그리고 웃으며 오토바이를 타고 사라져 버린 그 모습이 마지

막이 될 줄 우리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그 다음날 새벽 태국

국경을 향해 가는 버스 안에서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내 인생에서  그 마지막인 줄도 모르고 사라져가고 잊혀져 갔

던 수많은 얼굴들이 스쳐 지나간다. 예전에 오래토록 잊지 못해 사랑했던

여자친구의 얼굴까지도 그렇게 그냥 헤어진 게 마지막이 되어 버렸고, 친

구들 그리고 동료들 모두들 나는 마지막인 줄도 모르고 평소와 같이 밝게

인사했던 것이 모두 마지막이 되어 버리게 될 줄 그때는 몰랐던 것이다.




서울에 돌아온 지금. 나는 이번 여행에서 무엇이 남았는가 생각하게 된

다.

히말라야의 때묻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웅장한 자연, 설산, 순수한 포터

강가와 붓다, 장사장님 가족들, 민혜, 핀죠 아저씨, 캄보디아의 앙코르

왓 유적지, 순박한 청년 완... ...그리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경험들 등

셀 수 없이 많은 것이 이번 여행을 통해 남았다.


그렇지만 그런 모든 경험들보다도 서울에 돌아온 지금에야 이번 여행에서

얻은 게 무엇인지 느끼게 된다.


나는 앞으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고 사람을 만나겠다고 생각한다. 더더욱 정성스럽게 사람을 대하고 어

쩌면 이번 만남이 이 사람과 나의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슴에 갖

고 나중에 갖게 될지도 모르는 후회와 아쉬움 없이 모든 사람을 대하고 사

랑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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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26(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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